1. ……그럼 그 건은 내가 처리하지. 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해 줘.
  2. 예, 알겠습니다.
  3. 어이쿠, 두두잖아. 왜 그래, 무슨 볼일이라도?
  4. ……아니. 그냥 지나가는 길이다.
  5. 그래? 그런 것치고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인데.
  6. ……네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7. 감탄? 무슨 소리야?
  8. 사관학교에 있었을 땐 네 안 좋은 소문을 자주 들었었다.
  9. 여자와 놀러 다니고, 훈련은 게을리하고…… 폐하도 자주 골머리를 앓으셨었지.
  10. ……변명의 여지도 없사옵나이다.
  11. 아니 뭐,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성실하고 진지하게 일하고 있잖아?
  12. 그건 당연한 일이다.
  13. 네……
  14. ……하지만 네가 마음을 고쳐먹은 이유에는 흥미가 생겼어.
  15. 마음을 고쳐먹다니, 과장이 심하네. 더 단순 명쾌한 거야.
  16. 봐 봐, 지금은 폐하도 펠릭스 녀석도 훌륭하게 자기 일을 하고 있어.
  17. 동생뻘인 애들이 고생하는데, 나만 일을 내던지고 놀러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18. ……동생뻘.
  19. 그래. 지금의 그 녀석들에게 그다지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거든.
  20. ……그렇군.
  21. 내게도 여동생이 있었어. 네 마음은 이해가 된다.
  22. 여동생이 「있었다」라……
  23. 저기, 괜찮으면 얘기해 줄래? 네 여동생이 어떤 애였는지.
  24. ……음. 꽃을 좋아했어. 곧잘 화관을 만들어 주곤 했지.
  25. 그리고……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관철하는 고집스러운 구석도 있었어.
  26. 그렇구나. 아주 가련하고도 올곧은 아가씨였겠네.
  27. ……아무리 너라도 죽은 여자는 못 꼬드긴다.
  28. 꼬드기고 자시고 난 솔직한 느낌을 말했을 뿐이야.
  29. 하지만 혹시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나였어도 계속 꼬드기려고 했을지도 모르겠군.
  30. 그러고는 동생을 아끼는 착하고도 무서운 오빠에게 혼쭐나고 있었겠지.
  31. 훗…… 그럴 수도 있겠군.
  32. 실뱅. 이 싸움이 끝나거든 더스커의 땅을 방문해 봐.
  33. 변변치는 않다만…… 묘가 있거든. 기회가 된다면 안내하지.
  34. 그거 좋네. 그때가 되면 무진장 큰 꽃다발을 준비해 갈게.
  35. ……그래. 분명 동생도 기뻐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