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일이네, 네가 방에 틀어박혀 있다니.
마도에 관한 책에 푹 빠졌다고 들었어.
- 나도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야.
……사실, 계략이 떠올라서 말이지.
- 계략? ……그 도면은?
- 오, 좋은 질문이야!
이건 새로운 마도 포대의 설계도야.
- 호오, 마도 포대라…… 그런 것치고는
크기가 꽤 작아 보이는걸.
- 응. 소형화도 과제 중 하나니까.
기사가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가 이상적이지.
- 기사가 들고 다닌다고? 마도 포대를?
갖고 있어 봐야 쓰지도 못하잖아.
- 맞아. 네 말대로 마도 포대는 특별한
지식과 기술이 없으면 못 쓰지만……
- 그 부분을 잘 개량해서
누구나 쓸 수 있게끔 하는 게 제일 큰 과제야.
- 왜, 이걸 기사나 검사가 다룰 수 있다면
이런저런 나쁜 짓도 가능하지 않겠어?
- 동의한다
- 의문을 표한다
- 과연. 좋은 생각이네, 실뱅.
뭔가 재미있는 전술을 짤 수 있겠어.
- 그렇지? 역시 뭘 좀 안다니까.
너라면 분명 이해해 줄 줄 알았어.
- 그거, 도움이 될까? 기사나 검사는
잘 쓰는 무기로 싸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 ……우리 주변에 그런 녀석들밖에 없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뿐이야.
- 뭐, 어차피 완성은 아직 멀었지만.
언제쯤 햇빛을 보게 될지.
- 후후, 그 무렵엔 이미 전쟁이
끝났을지도 모르겠는걸.
- 전쟁 말고도 도움이 될 거야. 몸을 지킬
방법이 없는 사람에게도 유용하겠지.
- 호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내 검에
관심을 가졌었지.
- 고티에에 스렝이라는 오랜 적이
있기 때문이야? 그런 걸 생각하는 건.
- 뭐…… 그런 셈이지.
녀석들 때문에 매번 고생하고 있으니까.
- 아버지의 전 부인…… 형의 어머니도
스렝의 습격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어.
- 근 100년 정도는 유산 덕분에 영토의
경계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지만……
- 녀석들은 질리지도 않고 공격해 오거든.
그 집념은 적인데도 경탄스러울 지경이야.
- 고티에 변경백도 스렝의 습격에는
이골이 난 느낌이었지.
- ……아버지도 익숙해지고 싶어서
익숙해진 건 아닐 거야.
- 나도 집안을 이으면 힘써 보긴 하겠지만
역시 견제를 위한 병력은 필요해.
- 가령 국왕군…… 상비군을 신설해
왕권하에 강력한 군대를 만들 수도 있지만……
- 선왕 폐하는 그 방향으로 가려다가
반발하는 제후들의 원한을 샀지.
- 왕권이 강해지면 상대적으로 제후의 힘이
약해지니까. 받아들이긴 힘들려나.
- 나도 나라가 어지러운 건 사양이야.
온건하고 견실하게 개혁을 추진하고 싶어.
- 그러기 위해, 유산이나 제후에 의지하지 않고
전력을 끌어올릴 방법이 필요해.
- 달라졌구나, 실뱅.
어엿한 고티에가의 상속자가 되었어.
- 예전엔 매일 여자들 꽁무니나
따라다니기 바빴는데……
- 잘못하면 집안이 망할 상황이잖아?
아무리 게으른 나라도 조금은 머리를 쓰지.
- 왕국이 춥고 재미없는 땅이긴 해도
내겐 유일무이한 고향이니까.
- ……고향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