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것 봐……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뭐 불만이라도 있어? 율리스.
- 엉? 아, 아니. 미안하다.
잠깐 너희 형 생각을 하고 있었어.
- 난 아리안로드에서 얼핏 본 게 다지만,
소문으로 듣던 것과는 영 딴판이어서.
- 흠, 소문이라면…… 명문가의 장남이 도적으로
전락해서 마을을 들쑤시고 다닌다, 같은?
- 그래. 살기 위해 빼앗는 것도 아니고,
빼앗기 위해 빼앗는, 답이 없는 쓰레기……
- ……같은 말밖에 못 들었거든. 소문은
곧이곧대로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싶더군.
- 아니, 그 소문은 8할 정도 맞아.
적어도 2년 전까지는 그런 인간이었어.
- ……뭐, 용케도 폐하가 그 녀석을
설득했구나 하고 생각해.
- 문장이 없어도 사람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백성에게 보여 줘라……였나.
- 죽여주는 대사지. 열등감에 찌든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이 뭔지 참 잘도 아시더구만.
- 그런 얘기는 대체 어디서 듣는 건지……
참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야, 넌.
- 하하, 네가 그런 소릴 하냐.
그 고티에 변경백의 적자인 네가?
- 나도 알아, 네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끔찍이도 경계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 ……흐음?
- 하는 일이 이래서, 적의나 악의 같은 것에
민감한 편이거든.
- 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수상한 낌새라도 보이면 날 벨 생각이었지?
- 고티에의 후계자는 그저 난봉꾼이라고만
들었는데,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어.
- 아무 주저도 없이 사람을 베어 죽일 듯한
미소로 그렇게 말을 걸 줄이야……
- 그만, 그만! 옛날얘기는 꺼내지 마!
- ……그런데, 내 얼굴이 그렇게 위험해 보인다고?
사람을 베어 죽일 듯한 미소는 또 뭐야?
- 자각이 없다니 더 위험한 녀석이네!
아니면 설마 지금 그 쓴웃음도 연기냐?
- 어찌 됐든, 「아가씨」 같은 귀여운 별명이
어울린다는 생각은 당최 안 드는군.
- 아가씨보단, 제 아버지를 쏙 빼닮아서
빈틈없는 녀석이야, 넌.
- 하하, 그런 말을 들으니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 그냥 기뻐해. 내가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포드라 전체를 통틀어도 몇 없다고.
- 나도 네게 베여 죽지 않도록
평소 행실에 신경 쓰기로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