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아…… 큰일 났네……
폐하께 그런 실례를……
- 폐하는 다정하신 분이니 화는 안 내시겠지만
마주할 면목이 없어……
- 이런, 모니카님……
이런 곳에서 벽과 담소라도?
- ……뭐죠, 휴베르트.
- 지금 저는 당신을 신경 쓸 여유가 없거든요.
내버려 두세요.
- 큭큭…… 알겠습니다.
- 아까 에델가르트님이 비탄에 잠기시며
『모니카에게 상처를 줬어』라고……
- 말씀하셨던 걸
귀하에겐 알리지 않도록 하지요.
- 네? 폐하가? 아니, 근데
대놓고 알려 주셨잖아요……
- 그저 혼잣말을 한 겁니다.
- ……폐하의 방에 그림이 있었어요.
그게, 빈말로도 잘 그렸다 할 수가 없어서.
- 『누구 집 아이가 그린 낙서인가요?』
라고 물었는데, 폐하가 그린 그림이라……
- 폐하가 저에게 상처를 주셨다니
당치도 않아요……
- 상처를 드린 것은 저였죠.
그게 너무 한심해서……
- 뭐, 에델가르트님이
그렇게 보여도 섬세하신 분이라서요.
- 충격을 받은 나머지 무심코 귀하에게
상처가 될 말씀을 하셨을지도 모르겠군요.
-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자주 있는 일이니까요.
- ……휴베르트는 대단하네요.
폐하의 말씀에 좌지우지되지도 않고.
- 일전에 시종이 되고 싶었다고 했지만
……제게는 무리였던 것 같아요.
- 폐하가 너무나도 눈부셔서, 곁에 계속 있다간
정신적으로 버틸 수 없을 것 같거든요.
-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이 거리감이
저에겐 딱 맞는 것일지도……
- 이런, 그러십니까.
귀하가 시종이 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 기회……?
- 이 전쟁이 일단락되면, 폐하는 귀족이라는
신분을 폐지하려고 하실 겁니다.
- 일단 영지와 작위를 분리해서…… 귀족이어도
영주로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지겠지요.
- 그렇게 되면, 적녀여도 항상 폐하의
곁에 있는 게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만.
- ……! 그러고 보니, 그렇겠네요.
왜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 폐하의 목적을 몇 번이나 들었으면서
그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 잘 모르고 있었어요.
어리석었네요, 제가.
- 아뇨, 사회 구조란 게 그렇겠지요.
쉽게 흔들리는 게 아닙니다.
- 그래서 폐하가 극약 처방으로 파괴하려
하시는 거고요. 사람들의 상식을.
- ………………
- 솔직히, 당신만큼 폐하의 시종에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지 않을 겁니다!
- 언젠가 폐하의 시종이 되어, 귀족의…… 아니,
귀족을 넘어선 새 삶의 방식을 보여 드릴 거예요!
- 그렇다면 이런 데서 꾸물대고 있을
시간이 없겠군요!
- 큭큭큭큭…… 멈춰 서 계시는가 했더니
순식간에 앞질러 가 버리시고……
- 저도 뒤처질 수는 없지요.
진보해 나가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