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로렌츠. 힘든 전투였지만
서로 무사히 생환해서 다행이다.
- 그래…… 네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명예로운 전사자가 되었겠지.
- 나를 사모하는 여성들을 슬프게 하지 않았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의 인사를 해 두마.
- ……뭔가 좀 거슬리는 말투인데.
- 전에 너에게 했던 이야기 기억하지?
이 포드라에 마땅히 있어야 할 질서에 대해서다.
-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 잊었다고 말한다
- 그래, 분명…… 귀족은 평민을 지키고,
평민은 얌전히 잠이나 자라, 그런 얘기였지.
- 잠이나 자라고는 안 했지만……
귀족에게는 평민을 지킬 책무가 있다.
- 아니, 기억 안 나……
마땅히 있어야 할 질서가 뭔데?
- 이런…… '귀족은 평민을 지킬 책무가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을 텐데?
- 반대로 귀족이 평민에게 보호받다가
심지어 그 평민이 목숨을 잃는다면……
- 그 귀족은 귀족 실격이라고 해야겠지.
하마터면 내가 그리될 뻔했어.
- 그래도 내가 돕지 않았으면
아마 넌 죽었을걸?
- 나를 돕다가 네가 궁지에 몰렸다.
잘못하면 너까지 죽을 뻔했다고.
- 하지만, 이렇게 살아 있잖아.
- 운이 좋았을 뿐이니, 자각해라.
- 잘 들어, 평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귀족을 구할 필요는 없어.
- 평민의 목숨과 바꿔 가면서까지 살아남는 건
나에게는 견디기 힘든 굴욕이거든.
- 이번 같은 짓은 결코, 두 번 다시,
하지 말도록. 알겠나?
- 사과한다
- 거부한다
- 그래, 잘못했어.
미안하다.
- ……! 기, 기다려. 오해는 하지 마라.
난 절대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아니야.
- 도와준 상대에게 사과를 요구하다니
내가 그렇게 속 좁고 염치없는 남자로 보이나?
- 알았어, 그럼 사과한 건 취소할게.
……귀찮은 타입이네.
- 그게 도와준 상대에게 할 말이야?
내가 널 잘못 봤구나, 로렌츠.
- 뭣…… 잠깐, 그게 아니라. 감사는 하고 있다.
그저 내 입장을 이해해 줬으면 하는 것뿐이야.
- 그렇게 필사적으로 나올 필요는 없어.
잘못 봤다는 건 취소할게. ……귀찮은 타입이네.
- 귀찮다니 무례하군.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 미리 말해 두는데,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난 또 너를 도울 거야.
- 뭐라고?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건가!
- 아니, 네가 말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나에게도 내 방식이란 게 있어.
- 용병 출신이라고 해도,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 버리면 뒤가 너무 찜찜하다고.
- 그 동료가 나보다 약한 사람이라면 더 그래.
도와주는 것 말곤 방법이 없잖아?
- 너보다 약한…… 그건 설마,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 아니야? 애초에 보호받고 싶지 않으면
더 강해지면 되잖아.
- ……확실히, 네가 말한 대로다.
너무 정론이라 불만을 말할 수조차 없군.
- 좋다, 앞으로 나를 잘 보도록.
나는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는 남자니까.
- 너를 능가하는 힘을 길러
귀족인 내가 평민인 너를 구할 거다……
- 그러면 포드라의 질서가 지켜지겠지!
음, 만사 해결이로군. 하~핫핫!
- ……나쁜 사람은 아닌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