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네. 메리세우스에서의
전투 직후보다 훨씬 안색이 좋아.
- 후훗, 넌 말을 참 솔직하게도 하는군.
좀 더 돌려서……
- ……아니, 그러면 오히려 마음을 쓰는 게
느껴져서 난처할지도 모르겠어.
- 고맙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부딪치겠어.
- 아니, 딱히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는데……
- 뭐, 아무렇지도 않다니
다음 전투에서도 기대할게.
- 그래, 나만 믿으라고.
어떤 상대라도 꺾어 보일 테니까.
- 혹시 싸움에 져서 죽게 된다면
나에 관한 마지막 기록이……
- 「아버지를 벤 죄책감에 사로잡혀
전장에 그 목숨을 던졌다」가 될지도 모르니.
- 나는 아버지를 베었어.
아무 감정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 자신을 책망하지는 않아. 그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믿고 있거든.
- 어머, 그렇다면 나는 뭘까?
- 「재상과의 권력 투쟁 끝에 내란이 일어나게
만들고, 대외 전쟁에서 패한 어리석은 황제」려나?
- 그렇게 불릴 각오는 되어 있어.
물론 질 생각은 없지만.
- 당연하지. 지게 만들지 않을 거야.
만일 너와 내 목숨이 저울 위에 오른다면……
- 나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죽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서, 널 살리는 길을 택하겠어.
- ………………
- 뭐, 뭐야?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 아니, 그렇지 않아.
너는 참 강하고 긍지 높아.
- 세상 귀족들이 모두 너 같았다면 귀족이란
신분을 없앨 필요도 없을 텐데……
-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뭐, 불가능한 얘기지만.
- 불가능하지 않아! 아니…… 지금 상황에
불가능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
- 어쩔 수 없지만……
귀족의 잠재력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야.
- 대국의 정무와 군사를 짊어지기 위해,
선조 대대로 이어진 지혜와 지식으로……
- 영주로서 백성에게 받아 온 신뢰나
그 지방에 대한 이해, 통치 방안을 계승하지.
- 지금껏 귀족이 쌓아 올린 것들을
내버려서는 안 되는 거야.
- ……그건 당연하잖아?
나를 뭘로 보는 거야.
- 다 부수고 끝내자는 말이 아니야.
귀족의 뒤를 잇는 게 평민이 될 뿐이지.
- 하지만 아무리 소질이 있다 한들
일반적인 평민이 귀족을 대신하는 것은……
- 아니지, 잠깐.
그런 뜻이었군.
- 넌 귀족과 거상의 자제에게만 허락된
이전의 사관학교 같은 게 아니라……
- 재산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평민을 위한
학교를 만들어 귀족 교육을 하겠다는 거구나!
- ……!
- 넌 말을 곧잘 비약하곤 하지만……
그런 점이, 나한테는 필요할지도 몰라.
- 무슨 말이지?
아니, 의지해 주는 건 기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