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 여기는 이런 느낌이려나.
  2. 여어, 린하르트. 밖에서…… 그림을 그리다니, 별일이군.
  3.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비룡의 모습을 옮겨 담는 중이야.
  4. 보이려나, 저 언덕 위에 말이야. 야생 비룡이 휴식을 취하고 있잖아?
  5. 오, 그렇군. 신기한데. 그래서, 어떤 그림을……
  6. ……음. 예술성은 잘 느껴지지 않지만 뭐랄까, 소름 끼치게 정확하군.
  7. 이 비늘 모양만 해도 저기에서 그대로 가지고 온 듯한……
  8. 그러니까, 그림이 아니라니까.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9. 자료는 정확할수록 좋거든. 숫자나 보고도 그렇잖아?
  10. 과연…… 연구용으로 용도를 한정 짓는다면 정확성만이 요구되겠군.
  11. 그렇지. 난 예술 같은 건 잘 몰라.
  12. 그런 건 잘 아는 사람이 그리면 돼. 특이한 감성을 가진 베르나데타라거나.
  13. 그런 건 잘 아는 사람이 그리면 돼. 특이한 감성이 필요하니까.
  14. 하지만, 이게 그림으로서 평가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지.
  15. 흐음, 무슨 근거로?
  16.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먼 미래의 사람이 과거를 상상할 때……
  17. 멋진 예술보다도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묘사한 그림이 가치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18. 그래? 사람이 고대 예술품을 귀하게 여기는 건 달라지지 않을 거 같은데.
  19. 너도 그런 기호를 가진 사람 중 하나 아니었어?
  20. 물론이지. 그 부분은 부정할 필요도 없어.
  21. 하지만, 창조적이고 위대한 예술품 옆에 이 단정하게 옮겨 그린 그림이 나란히 있는……
  22. 그런 미래를 상상하고 말았어. 너도 한번 그 광경을 상상해 봐!
  23. ……넌 항상 긍정적인 이야길 하는구나. 언제나 미래를 직시하고 있어.
  24. 너는 그렇지 않다는 뜻인가? 나는 너도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25. 으음, 나는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
  26.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잘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지금 자지 않고 있는 거고.
  27. 공교롭지만…… 내 입장에서는 지금도 미래에도,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많아.
  28. 우선은, 나를 그려 주는 건 어때?
  29. 그러니까, 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니까. 그냥 네 모습을 그대로 옮길 건데 괜찮겠어?
  30.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어. 분명 먼 후손들이 나를 생각해 주겠지.
  31. 뭣하면, 네 연구에 써도 좋아. 귀족을 대표하는 사나이의 모습으로써.
  32. ……………… 뭐, 그리는 것 자체는 상관없어.
  33. 아니, 너를 연구할 생각은 전혀, 조금도, 티끌 하나만큼도 없지만.
  34. 그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인지 궁금하기는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