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 여기는 이런 느낌이려나.
- 여어, 린하르트.
밖에서…… 그림을 그리다니, 별일이군.
-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비룡의 모습을 옮겨 담는 중이야.
- 보이려나, 저 언덕 위에 말이야.
야생 비룡이 휴식을 취하고 있잖아?
- 오, 그렇군. 신기한데.
그래서, 어떤 그림을……
- ……음. 예술성은 잘 느껴지지 않지만
뭐랄까, 소름 끼치게 정확하군.
- 이 비늘 모양만 해도 저기에서
그대로 가지고 온 듯한……
- 그러니까, 그림이 아니라니까.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자료는 정확할수록 좋거든.
숫자나 보고도 그렇잖아?
- 과연…… 연구용으로 용도를 한정 짓는다면
정확성만이 요구되겠군.
- 그렇지.
난 예술 같은 건 잘 몰라.
- 그런 건 잘 아는 사람이 그리면 돼.
특이한 감성을 가진 베르나데타라거나.
- 그런 건 잘 아는 사람이 그리면 돼.
특이한 감성이 필요하니까.
- 하지만, 이게 그림으로서 평가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지.
- 흐음, 무슨 근거로?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먼 미래의 사람이 과거를 상상할 때……
- 멋진 예술보다도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묘사한 그림이 가치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 그래? 사람이 고대 예술품을
귀하게 여기는 건 달라지지 않을 거 같은데.
- 너도 그런 기호를 가진 사람 중
하나 아니었어?
- 물론이지.
그 부분은 부정할 필요도 없어.
- 하지만, 창조적이고 위대한 예술품 옆에
이 단정하게 옮겨 그린 그림이 나란히 있는……
- 그런 미래를 상상하고 말았어.
너도 한번 그 광경을 상상해 봐!
- ……넌 항상 긍정적인 이야길 하는구나.
언제나 미래를 직시하고 있어.
- 너는 그렇지 않다는 뜻인가?
나는 너도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 으음, 나는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
-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잘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지금 자지 않고 있는 거고.
- 공교롭지만…… 내 입장에서는 지금도
미래에도,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많아.
- 우선은, 나를 그려 주는 건 어때?
- 그러니까, 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니까.
그냥 네 모습을 그대로 옮길 건데 괜찮겠어?
-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어.
분명 먼 후손들이 나를 생각해 주겠지.
- 뭣하면, 네 연구에 써도 좋아.
귀족을 대표하는 사나이의 모습으로써.
- ………………
뭐, 그리는 것 자체는 상관없어.
- 아니, 너를 연구할 생각은 전혀,
조금도, 티끌 하나만큼도 없지만.
- 그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인지
궁금하기는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