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애쉬. 왜 그래?
자료 무더기를 그렇게 노려보고.
- 군의 훈련 기록에 각 도시의 조세 기록이라……
뭔가 조사하는 거라면 도와줄 수도 있는데.
- 아뇨, 조사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공부 좀 하려고……
- 공부……?
- 네. 사관학교가 휴교해 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어서……
- 이렇게 여러 기록을 읽어 보면
조금이나마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 흐음……
너도 참 성실하구나.
- 하아…… 여기저기서 분쟁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도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 그러게요. 다 같이 훈련도 하고
마도나 역사 수업도 받고……
- 그렇지. 성신의 달에는 귀여운 여자애를
꼬셔서 무도회도 가고 말이야!
- 무슨 그런 경박한 소리를 하고 그러세요……
- 그나저나 애쉬, 그 기록이란 건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아?
- 네! 특히 훈련 기록 같은 건
보기만 해도 재미있어요.
- 흐음…… 보기만 해도라.
그래서야 좀 아까운걸.
- 예를 들어, 그 훈련 기록은…… 1166년,
북방의 세 가문 합동으로 시행된 대규모 연습.
- 궂은 날씨 속에 시행됐다고밖에 쓰여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눈보라 속의 행군이었지.
- 사상자가 나올 만큼 혹독한 연습이었다는데
이게 무엇을 위한 연습이었는지 알아?
- 눈 속 행군……? 1166년……
아, 혹시 스렝과의 싸움에 대비해서?
- 정답. 수년 후에 예정돼 있었던
북벌에 대비한 훈련이었어.
- 즉 1166년에는 이미 대규모 정벌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뜻이니……
- 그 점에 주목해서 가까운 시기의 훈련을 보면
선왕 폐하가 뭘 생각하셨는지도 알 수 있지.
- 그렇다면, 다른 자료에 쓰여 있는
게네우라에서 실시된 훈련이란 건……
- 스렝 녀석들이 산을 넘어왔을 때나
바위 사막에서의 전투를 상정한 걸 거야.
- 그렇구나…… 그래서 훈련 내용도
기마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편중된 거군요.
- 굉장해요. 그렇게 대조해 보면
사람의 의도 같은 것도 보이겠네요.
- 그게 바로 기록이 갖는 가치라고 할 수 있지.
자, 그럼 이 이상 널 방해하기도……
- 앗, 잠깐만요! 혹시 괜찮으시면
다른 것도 이것저것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 아 근데…… 가르침이라면 나보다도
학자 같은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 거야.
- 왕도에 있을 때야 그래도 괜찮지만
행군 중에는 그럴 수도 없고……
- 저, 더 배우고 싶어요.
폐하의 기사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거절을 못 하겠잖아.
……너무 기대는 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