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 참 빠르다, 애쉬. 널 기사로 임명한 지도 벌써 1년 반인가.
  2. 낯선 땅에서 일하려면 이래저래 힘들 텐데. 뭐 곤란한 건 없어?
  3. 아뇨, 그렇지 않아요. 왕도 분들께서 모두 친절히 대해 주셔서……
  4. 굳이 말하자면, 저 같은 게 기사 직책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직 불안하네요.
  5. 지금 블레다드가를 섬기는 기사는 내 대가 되고 나서 성에 들어온 자가 대부분이야.
  6. 즉위하기 전부터 나와 함께 싸워 준 네가 이제 와서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7. 네, 네…… 하지만 저는 귀족 출신도 문장 보유자도 아니라서……
  8. 그런 절 임용해 주신 은혜는 이 목숨을 바쳐 갚을 생각입니다.
  9. ……………… 그런데 말이야 애쉬, 기사란 뭐라고 생각해?
  10. 네? 백성과 왕, 넓게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자……가 아닐까요?
  11. 그렇지…… 네 말대로 그렇게 하는 게 기사의 본분이라고 다들 말하지만……
  12.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가 않아. 파고들어 보면, 기사는 사람을 죽이는 자야.
  13. 기사도가 충의를 가르치는 건, 기사를 통제하고 주군을 배신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해.
  14. 그건…… 그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15. 기사도를 받드는 건 좋지만, 목숨을 바쳐 가면서까지 그걸 관철할 필요는 없어.
  16. ………………
  17. 내 친구는 왕가를 섬기는 기사였어.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좋은 친구였지.
  18. 하지만 내 눈앞에서 죽었어. 도망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 당연하다는 듯이 살해당했지.
  19. 로드릭님께 들은 적이 있어요. 펠릭스의 형님 말씀이시죠……
  20. ……맞아. 지금도 내 귓가에는 그 녀석이 죽던 때의 목소리가 들려.
  21. 충의냐, 제 목숨이냐를 선택해야 할 날이 너에게도 언젠간 찾아올지도 몰라.
  22. 그때가 오면 네 목숨을 선택해 줘. 제멋대로인 바람이란 건 알지만.
  23. 하지만 그러다가, 만약 제가 폐하께 활시위를 당겨야 하게 된다면요……?
  24. 날 쏠 수 없다면 조용히 전장을 떠나.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만.
  25. 알겠……습니다. ……그래도 하나만,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릴게요.
  26. 분명 당신을 지킨 그분은 기사라서 목숨을 내던진 게 아닐 거예요.
  27. 설령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친구인 당신을 지키고 싶었을 거라 생각해요.
  28. 살아 있으면 찾아왔을 모든 미래를 버려 가면서…… 말인가?
  29. ……저도, 그분의 행동이 옳았는지는 모르겠어요.
  30. 그러니 저도,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결코 목숨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31.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마음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32.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군……
  33. ……자, 슬슬 난 훈련 때문에 가야겠다. 병사들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34. 너희가 충성할 만한 주군으로 있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하니까.
  35. ……노력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폐하는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왕이신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