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봐, 보고는 끝난 건가?
- 응. ……아, 나한테 뭐 볼일 있었어?
기다리게 해서 미안.
- 볼일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고생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 전황이 상당히 비관적이었다고 들었는데,
용케 무사히 돌아왔군.
- 응, 그냥 도적 퇴치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고전할 줄은 몰랐어……
- 다친 데는?
- 보다시피 무사해. 부대 사람들도 모두.
- ……이것 덕분에, 그 전장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어.
- 형의…… 그런 쇳덩어리가
무슨 도움을 줬다는 거야?
- 무언가에 직접 도움을 준 건 아니지만
마음의 버팀목이 됐다고 할 수 있으려나.
- ……이건 그 사람의 긍지와,
이루지 못한 책무의 상징이잖아?
- 그런 소중한 물건이 품 안에 있는데
한심하게 포기할 수는 없어.
-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만 더 힘내 보자는
용기가 솟아났거든……
- ……이해가 안 가는군, 나한테는.
- 죽은 자를 추억하는 건 상관없다만,
지나친 정은 검을 둔하게 할 뿐이야.
- 추억해 봐야 그들이 살아 돌아오지도 않고.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 펠릭스는 그런 구분이 너무 확실해.
그게 네 강점이겠지만……
- 그래도, 언젠간 너도 알게 될 거야.
추억이 사람을 버티게 해 줄 때도 있다는 걸.
-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도움을 받는 건가.
- 그럼 슬슬 난 돌아갈게.
하아, 오랜만에 마음 놓고 잘 수 있겠다.
- 기다려, 잉그리트. 부탁이 하나 있다.
- 음? 무슨 일인데?
네가 나한테 부탁을 하다니 별일이네.
- ……조만간, 형에게 얼굴 한번
비치러 가 줘.
- 앞으로도 전쟁이 이어지면, 이번처럼
고된 싸움이 언제 또 일어날지 몰라.
-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도움을 준다면……
꽃 좀 바친다고 손해 볼 건 없겠지.
- 그렌의……
응, 그래. 상관없어.
- 물론 너도 같이 가는 거지?
참, 모처럼이니 폐하도 부르자.
- 그리고 로드릭님하고, 실뱅이랑
구스타브님, 또 지금 부대 사람들도……
- 그리고 우리 부대 사람들에게도
물어봐서……
- 기다려, 멍청아. 그렇게까진 말 안 했어.
성당 안에서 연회라도 열 셈이야?
- 당연히 그런 짓은 안 하지.
아, 그래도 연회는 좋은 생각이네.
- 긴장 풀기에도 적당할 것 같고,
무엇보다 그렌은 떠들썩한 걸 좋아했으니까.
- 그래도 그렇지…… 아니, 됐다.
그때까지 시시한 전장에서 죽지나 마라.
- 불러 세워서 미안했다.
오늘은 고기라도 먹고 푹 자.
- 후후…… 고마워, 펠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