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렸지, 로렌츠. 뭐야, 나한테 할 이야기라니.
설마 사랑 고민 이야기야?
- 아니. 미르딘대교 건에 관계된
여러 전략에 대한 이야기다.
- 그 얘기구나…… 사죄라면 얼마든지 할게.
너에게도, 네 아버지에게도.
- 명문 글로스터 백작가에 배신자란
오명을 뒤집어씌우고 말았어. 미안하다.
- 됐어, 사죄라면 이미 받았으니까.
게다가 아버지도 합의하신 일이잖아?
- 다행히 나 자신은 청렴한 그대로다.
가문의 명성에 난 흠집도 바로 잡을 테고.
-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 ……너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레스터 제후 동맹령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 ………………
- 클로드, 우리는 정말 너를
믿어도 괜찮은 거겠지?
- 물론 지금까지의 네 활약 덕분에 동맹령이
궁지를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사실이야.
- 하지만, 난 전부터 널 신임할 수가 없다.
지금도야. 신임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 불안하기 때문이지. 출신조차 애매한,
너 같은 남자에게 의지해야만 하니까.
- ……여전히 가차 없구나, 로렌츠.
- 뭐, 너의 마음도 이해는 가.
나라도 나 같은 남자는 신임할 수 없을 테니까.
- 흠……
- 이런 녀석에게 자신과 소중한 가족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느냐 묻는다면, 아니라 대답할 거야.
- 꽤나 스스로를 비하하는군.
- 아니지, 표현이 지나쳤군.
내가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지?
- 하지만…… 난 전지전능한 여신님이 아니야.
미래를 통찰하는 힘 따윈 눈곱만큼도 없지.
- 그래서, 온갖 가능성에 대비해
손에 든 패를 늘릴 수밖에 없어.
- ………………
- 가능성은 무한히 있어. 아무리 손에 든 패를
늘려도, 불안함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
- 자신을 신임할 수 없다고 말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야. 늘 줄타기하는 것 같아서……
- ………………
- 이봐, 로렌츠. 아까부터 조용하다만
내 이야기 듣고 있는 거야?
- ……네가 나에게 마음속 불안을 토로하다니,
너무 의외라 말이 나오지 않는군.
- 설마, 이것도 네 책략 중 하나인가?
나를 속여서, 대체 뭘……
- 잠깐만, 침착해.
먼저 말을 걸어온 건 너잖아.
- 솔직하게 대답해 줬을 뿐인데,
그런 태도는 좀 심한 거 아니야?
- 아니, 하지만. 얼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이런…… 곤란하군.
- 곤란한 건 이쪽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