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 할 말이 있어 보이네.
- ……모처럼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는데
막상 마주하니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 우리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어.
- 그런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 하지만…… 네 입장에서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인" 나에겐 허심탄회할 수가 없나 보구나.
- 그렇다면 이제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각자의 길을 그저 믿고 걸어가야겠네.
-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야.
……하지만, 결국엔 그렇게 결론이 나겠지.
- 난 내가 택한 길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만한 각오를 하고 정한 거였어.
- ……나도 길을 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 뭐, 아무튼. 이렇게 입을 움직이는 것보단
몸을 움직이는 편이 더 의미가 있을 거야.
- ……그래.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만 내 질문에 대답해 줘.
- 황비 안젤마의……
어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어?
- 왜 나에게 그런 걸 묻지?
- 황제라면 그녀의 행방을 알 거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거든…… 아마, 망언이겠지만.
- 그래?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지금보다 한참 예전인, 어렸을 때야.
- 제국에서 추방당하기 직전의……
그 후의 일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 그렇군…… 그렇겠지.
- 고마워, 대답해 줘서…… 자 그럼,
일단은 여길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보자.
- 그래. 뭘 하든 간에,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시작할 수가…… 윽!
- ……갑자기 흔들리다니.
- 하아…… 대체 뭐지,
이 공간은……
- 일어날 수 있겠어? 에델가르트.
- 그래, 고마워…… 앗.
- ……지금 같은 상황에, 서로의 입장 같은 걸
생각해 봤자 아무 소용 없잖아.
- ……그래.
신경 쓰지 말도록 하자.
-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올랐어.
어렸을 때 일인데.
- 웅크리고 있던 내 앞에 갑자기 손이
나타나서…… 무심코 그 손을 잡아 버렸지.
- 상대가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말이야……
나도 참, 성장하지 않는 것 같아.
- ………………
- 디미트리? 왜 그래?
- ……아니. 나도 언젠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서.
- 넌 자주 그럴 것 같기는 해.
- 누구에게 손을 내밀었는지
다 기억나진 않을 듯싶은데.
- ……공교롭게도 난 소중한 사람의 얼굴을
쉽게 잊어버리는 성격이 아니거든.
- 자, 이 이상 잡담이나 나누고 있다간
저 두 사람도 기다리다 지치고 말 거야.
- 이 공간을 빠져나가자.
- 돌아갔을 때에도 내가 멀쩡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야.
- ………………
- 디미트리, 뭐 하고 있어?
두고 간다.
- 그래, 가자.
……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