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펠릭스, 거기 앉아 봐라.
  2. 난 바빠. 먼저 용건부터 말해.
  3. 너란 녀석은…… 뭐, 됐다. 너와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 둬야겠다 싶어서 말이다.
  4. 피차 내일 무사할지도 확실치 않은 처지이니.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지.
  5. 쳇, 재수 없는 소릴. ……그래서, 뭐야.
  6. 그렌에 대해 했던 말을 사과하려고. 그땐…… 미안했다.
  7. ………………
  8. 그건 적어도, 네 앞에서 꺼내선 안 되는 말이었어.
  9. ……흥. 해명을 하고 싶은 거라면 못 들어 줄 것도 없지.
  10. 미안하다. 그럼 사양 않고 말하마. ……나도 그렌의 죽음이 원통하긴 마찬가지였다.
  11. 장렬한 최후였겠지. ……하지만 그건 녀석이 선택한 삶이자, 죽음이야.
  12. 마지막 한순간까지, 그렌은 친구를, 퍼거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13. 그렌 자신이 선택한 죽음을, 아버지인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어쩌겠냐.
  14. 어떻게 그게 형 자신의 선택이라 확신하지? 나도, 당신도 알 수 없는 일이잖아.
  15. 뭐, 멧돼지라면 알고 있을지 몰라도, 그놈은 자기가 죽게 했다는 말밖에 안 하니……
  16. 그렇지. 그렌이 어떤 생각, 어떤 마음으로 죽었는지는 그저 짐작해 볼 수밖에 없어.
  17. 하지만 그 참극의 자리에 있었던 게 나라면, 그리고 너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냐?
  18. 살아남기 위해 폐하를 두고 달아났을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싸우기를 선택했을까?
  19. 나였다면 반드시 폐하를 지켰을 거다. 그렌도 달아날 만한 성격은 아니었지.
  20. 뭐든 당신 잣대로 판단하지 마. 적어도 난 전자도, 후자도 선택하지 않아.
  21.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일일이 마지막까지 어쩌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해?
  22. 난 내 의지로, 내 생각대로 싸울 거다. 그리고…… 녀석과 함께 살아남을 거야.
  23. ……훗. 나 원, 욕심도 많구나. 그렇게 단언하는 네가, 난 자랑스럽다.
  24. 내가 그 전장에 있었더라도, 그런 억지를 부릴 생각은 못 했을 거야.
  25. 녀석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마저 했을지도 모르지.
  26. ……당신이 했던 생각도 이해는 가. 아니……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어.
  27. 그저 미사여구로 장식된 죽음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을 뿐이야.
  28. 미안했다, 펠릭스.
  29. 이제 됐어. ……이렇게 당신과 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30. 그리고, 그……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
  31. 그럼 나도 사과해 두지. 그때 때려서 미안했어. ……아버지.
  32. 아아, 그때! 그것참 어찌나 아프던지. 전장에서 받은 어떤 일격보다도 아팠어.
  33. 시끄러워. 이미 사과는 다 했어. 이야기가 끝났으면 난 이제 간다.
  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