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안하다. 반드시 복수할게.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줘.
- 너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를 밝히고……
어떤 형태로든 꼭 복수하마. 그러니……
- 이봐.
- 그레…… 아니, 펠릭스구나.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군.
- 이미 20년이나 알고 지낸 사이인데
새삼 꼴사납고 자시고가 어딨어.
- 다들 자고 있을 시간에
혼자서 예배당에 틀어박혀 뭐 하는 거냐.
- 네 목소리가 들리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백일몽이라도 꾸고 있었냐.
- ……네겐 숨겨도 소용없겠지.
- 백일몽…… 비슷한 거야. 그날 죽은 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거든.
- 만약 그 사건에 제국이 관련되어 있다면,
황제가 그걸 묵인하고 있었던 거라면……
- ……자신들과 똑같은 최후를 안겨 주라고
소리쳐. 가슴을 찌르고 목을 치라고……
- 언제부터지?
그런 게 보이기 시작한 건.
- 6년 전부터…… 하지만
목소리가 들린 건 4년 전…… 첫 출진 때야.
- 적장의 얼굴을, 난 알고 있었어.
……더스커에서 본 얼굴이었지.
- 놈의 목을 쳤을 때, 모두가 큰 소리로 웃더군.
울고 괴로워하던 자들이.
- ……납득은 안 되는데
뭐, 이제야 좀 알 것 같군.
- 근데 말이야, 형도 선왕 폐하도 다른 자들도
그렇게 널 책망하거나 하지는 않아.
- 네 편안한 삶을 용서하지 못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야.
- ……누군가가 날 용서한다 한들,
난 죽을 때까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 걱정 마라, 너한테 그렇게 뛰어난 사고 능력이
있을 거라곤 털끝만치도 기대하지 않으니.
- 하지만 넌 사람들을 이끄는 국왕이야.
네가 길을 잃으면 모두가 갈 길을 잃는다.
- 그 타오르는 복수심은 가슴에 묻어 둬.
그건 나만 알고 있으면 돼.
- ……그 말은, 약한 소리를 할 거면
네 앞에서만 하라는 뜻인가?
- 흥……
- ……내가 짐승으로 전락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건 이렇게 네가 받아 주기 때문이야.
- 루그에게 키폰이,
아버지에게 로드릭이 그랬듯이……
- 앞으로도 내 오른팔로서
옆에 있어 줘, 펠릭스.
- ……오른팔이라.
뭐, 듣기 나쁘지는 않네. 그렇다면……
- ……!
어이, 펠릭스, 갑자기 무슨……
- 오른팔로서의 책무를 다해야지. 우선은
쉴 줄을 모르는 왕을 침대로 모셔야겠다.
- 이봐…… 날 업어서 옮기려고?
무리하지 마. 발이 바닥에 닿은 상태로……
- 조용히 해라, 네가 쓸데없이 자라서 그렇잖아!
이 근육 덩어리가, 어지간히도 옮기기 힘드네.
-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그땐 다리를 접질린 널 내가 옮겼었는데.
- 그래, 그거 좋은 훈련이었지?
이번엔 내 훈련에 네가 동참해라, 디미트리.
- 후후…… 그래, 그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