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좋은 기회잖아, 디미트리.
이 자리에서 터놓고 얘기해 보자고.
- 클로드, 슬슬 들려주지 않겠어?
싸움 끝에 네가 바라는 게 뭔지.
- 나쁜 속셈은 없어……라고 해 봐야
넌 납득하지 않을 테고, 어쩔 수 없군.
- 분명히 말하지. 내 바람은 중앙 교회를,
대사교를 없애고……
- 지금의 굳어 버린 포드라의 질서를
쳐부수는 거야.
- ……쳐부순다고?
- 그래. 문장과 맞바꿔 너희에게 책무를
부과하고, 자유로운 삶을 빼앗은 게 누구지?
- 너나 네 친구가, 바라지도 않은 지위를,
혼인을 강요당하는 건 누구 탓이고?
- 게다가 교단은…… 포드라 외부 국가와의
공적인 외교마저 금지하고 있어.
- 스렝이나 알비네와 가까운 퍼거스에도
참 답답한 소리지 않아?
- 요컨대, 너희는 교단을 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 요컨대, 너희는 교단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지……
- 퍼거스라는 나라 자체에 적의를
품고 있는 건 아니다, 이 말이군.
- 그래, 맞아. 우리에겐 너희와 싸워서
이득 볼 게 하나도 없다고.
- 게다가, 적도 교단 그 자체라기보다 의사를
결정하는 이들…… 교회 상층부뿐이야.
- ……클로드. 네 생각은 이해가 가.
개인으로서는 찬성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어.
- 개인으로서는?
국왕으로서는 반대인가?
- 이유는 세 가지야. 우선, 퍼거스에게 있어서
교단의 배제란 곧 왕권을 부정한다는 뜻이지.
- 왕의 부재는 사람들의 혼란과 전쟁을 불러와.
그렇게 되면, 너희가 책임져 줄 건가?
- 둘째. 함부로 교단을 저버리면, 교단이나
교단과 가까운 이들과의 갈등만 생길 뿐이야.
- 그리고 셋째, 고통이 따르는 개혁은
백성도, 너 자신도 위험에 빠뜨릴 거다.
- 처음 두 가지는 그렇다 쳐도,
마지막 하나는 수긍이 안 가는군.
- 걱정은 고맙다만…… 위험은 이미 각오했어.
그래도 난 도전하는 길을 택할 거야.
- 모르겠어? 네가 내버리려는 자들도,
너와 같은 인간이야.
- 아무리 뛰어난 술책을 짜내고, 아무리
위험하지 않도록 일을 진행한다 한들……
- 거기에 불이익을 당하는 자가 있는 한,
싹을 자른다 해도 반드시 응보를 받게 돼.
- 나는…… 사람을 내버리는 죄악감도,
그 응보도, 지긋지긋할 만큼 맛봐 왔어.
- 누구나 응보는 받는 법이야. 그걸
두려워해서는 포드라가 나아갈 수 없어.
- 낡은 채로 뒤처진 포드라를
기다리는 건…… 멸망뿐이라고.
- 나아가기에 앞서 기반을 굳혀 두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와해되고 말아. 그리고……
- 버려져서 고통스러워하는 자가 있다면
난 그들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러냐, 모든 것을 구하고자 하는
네 이상은, 내겐 지나치게 눈부시군.
- 내 입장에서는,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는
네 모습이 부러워, 클로드.
- 내가 바라는 세상에서는, 너도 지위에
속박받지 않고 너답게……
- 아니, 디미트리. 모두를 구하려 하는
네 심성은, 솔직히 마음에 들어.
- 네가 왕이 아니었다면, 우린 분명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 "친구"라.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 너와 함께였다면 내게도, 또 다른 포드라의
모습이…… 보였을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