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맛있네요, 이 홍차. 조금 덜 달긴 하지만, 좋은 향이 나요.
1. 눈치챈 건가. 실은 희귀한 장미의 꿀을 넣었거든.
2. 그렇구나, 그래서 독특한 맛이 나는 거였군요. 좀 마음에 들었어요.
3. 꿀을 진하게 탈수록 상대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
4. 꿀의 농도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단 과자와도 잘 어울리고요. 아, 벌써 과자가……
5. 윽…… 벌써 다 먹었구나. 안타깝게도 과자는 그걸로 끝이다.
6. 지금은 단것을 구하기 힘들어서 말이지…… 다른 원하는 게 있으면 되도록 내오겠다만.
7. 아뇨, 딱히 없어요. 과자가 없다면 홍차도 이걸로 충분해요. 그럼 이만……
8. 잠깐. 원하는 게 없다면 하고픈 얘기는 없고? 고민이 있다든가……
9. 아뇨, 아무것도. 그럼……
10. ……리시테아. 난 알고 있어. 너에게 평민이 되고 싶다는 고민이 있다던데?
11. ……누구에게서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딱히 고민인 것은 아니에요.
12. 평민이 되고 싶은 건 맞지만요.
13. 전쟁이 끝나면 작위를 반납하고, 부모님과 조용히 살 생각이에요. 그거에 문제라도?
14. 귀족의 신분을 버리려 한다는 건 뭔가 힘든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15. 게다가 평민의 삶이 어떤 건지 필시 불안한 마음이 들겠지.
16. 내가 아는 한, 귀족에서 평민으로 떨어진 자는 누구든 예외랄 것 없이 고통스러워했으니까.
17.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고민 한두 개쯤은 반드시 나올 거다.
18. 당신이 말한 사람들은 뭔가 일을 저질러서 작위를 뺏기고 몰락한 귀족들이잖아요?
19. 제 경우는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거예요.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 주실래요?
20. 그, 그렇군…… 그렇다면,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지.
21. 평민이 되더라도, 귀족과의 벽을 넘나드는 삶을 사는 건 어떤가?
22. 우수한 귀족으로서의 경험이 있는 네가 그저 평민으로 묻혀 버리는 건 아까워.
23. 너라면 평민의 관점으로 이 세계를 바꿔 나가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다.
24. 너의 제안이라면 귀족도 분명 귀를 기울이겠지. 평민의 삶을 보다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25. 이제 그만하세요. 확실히 당신의 생각은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26. 하지만…… 저에게 그런 걸 말해 봤자 의미 없어요.
27. 평민을 위해서며 세상을 위해서며…… 그건 귀족이 생각할 일이잖아요?
28. 저는 이제 이 포드라를 위해서 뭔가를 짊어지는 일 같은 건 할 수 없어요.
29. 그저 부모님 곁에서 남은 인생을 조용히 살아가는 것밖에는……
30. 리시테아……?
31. 당신이 우려 주신 홍차, 맛있었어요. 잘 먹었습니다.
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