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하…… 이런, 무기 손질 중이셨습니까?
제가 방해한 것 같군요.
- 아니, 좀 전에 일단락 지은 참이야.
무슨 일이지, 로드릭?
- 그게, 얼마 전 고티에령에 갔을 적에
마티아스 녀석에게 이걸 받아 왔습니다.
- 변경백에게? 이 검은……
- 람베르에게서 빌린 채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더군요.
- 30년도 전에 빌린 검을 자식 세대에 와서
돌려주다니, 참 게을러빠진 녀석입니다.
- 30년 전이면, 자네들이 사관학교에
있었을 때로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저희 3명이 있던 반이 다 같이
도적 토벌 과제를 하러 갔을 때……
- 제가 무심코 튀어 나간 탓에,
동료들과 적진에 낙오된 적이 있었습니다.
- 도우러 갈지 말지를 두고, 그 두 사람이
전장에서 서로를 붙잡고 싸움을 벌였다더군요.
- ……조금 뜻밖이군.
아버지는 그렇다 쳐도 그 변경백까지?
- 녀석도 예전에는 혈기 왕성한 사내였고,
무엇보다 물러설 수가 없었을 겁니다.
- 물자가 거의 다 떨어졌으니,
교단의 지원을 기다리자던 마티아스와……
- 혼자서라도 도우러 가려던 람베르의
싸움이 어떻게 됐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 다만 결국, 람베르와 마티아스는 둘이서
적진을 돌파해 저희 앞에 나타났습니다.
- 아버지도 물불을 안 가리신다고 해야 하나……
젊은 시절이었던 만큼 미숙하셨었군.
- 한창 싸우던 중에, 창이 부러진 마티아스에게
람베르가 빌려준 검이 이것이라고 합니다.
- 어쩌다 보니 돌려줄 기회를 놓친 채 30년이나
지나 버릴 줄이야, 하고 웃지 뭡니까.
- 아니. 변경백이라면,
정말로 30년이나 잊고 있었을 리가 없지.
-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상상입니다만……
- 폐하가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시는 지금에야
녀석의 죽음을 과거로 보게 된 것이 아닐까요.
- ……그렇군. 어찌 됐든, 변경백에게는
잘 받았다고 전해 두지.
- 그나저나 이야기를 듣자니, 아버지는 예전부터
동료를 잃고는 못 배기는 성미셨나 보군.
- ……동료가 다칠 걸 알면서 싸움을 시작한
나를, 아버지는 어리석다고 비웃으실까?
- 그건 어려운 질문이군요.
동료를 아끼는 분이셨던 건 분명하지만……
- 백성을 줄곧 보살피던 교단을 저버리는 것도
분명 주저하셨을 겁니다.
- ……로드릭. 아버지를 잘 아는 자네에게
다시금 부탁하고 싶어.
- 혹여 내가, 아버지에게 부끄러울 만한
행동을 한다면……
- 목숨 걸고 막겠습니다.
그건 그 녀석과의 약속이기도 하니까요.
- ……고맙다.